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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 2004년부터 시작해 2008년까지 237주 연속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최장기간 연속 순위 1위 기록을 세웠으며 그는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20개 보유하고 많은 스포츠 전문가들과 비평가들이 과거 선수들과 현역 선수들에 의해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 선수는 역대 남자 선수 중 가장 많은 총 20개의 그랜드 슬램 단식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또한 그는 2009년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역대 7번째 남자 선수가 되었고 역대 남자 선수 중 가장 많은 총 30회의 그랜드 슬램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테니스의 황제

스위스 출신의 아버지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엄마의 사이에 태어나 그는 교외에 있는 지역에서 성장하였고 어린 시절 테니스 선수가 되기로 하기 전까지 축구를 함께 배웠으며 축구 또한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고려할 정도로 테니스 외에도 출중한 기량을 보였고 다양한 자선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2003년에 그는 빈민층을 돕고 스포츠의 보급을 장려하기 위하여 로저 페더러 재단을 설립하였고 2005년 당시 허리케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하여 2005년 경기에서 사용되었던 그의 라켓을 경매에 내놓기도 하였으며 2006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한 뒤 그는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유니세프의 광고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페더러는 6세 처음 테니스를 시작하여 9살이 되면서 그룹 개인지도에 참가하고 다음 해 개인지도를 그는 테니스 선수가 되기로 했던 12세 전까지는 축구 또한 함께 배웠는데 그 후는 테니스에 몰두하며 14세 때는 스위스의 그룹 통합 주니어 챔피언이 되었으며 스위스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훈련받을 어린 선수로 선정된 후 1996년부터 ITF 주니어 테니스 대회에 참가를 시작 후 주니어 선수로 활동한 마지막 해였던 1998년 윔블던 주니어 타이틀 및 가장 중요한 주니어 대회 중 하나인 타이틀을 받았습니다.

플레이 기술

페더러의 플레이 스타일은 일단 모든 플레이에 능하며 올라운더는 베이스라인 게임을 하는 선수와 비교를 해보면 특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 쉬운데 페더러는 별명에 걸맞게 모든 플레이의 수준이 최상위에 있는데 특히나 상대방에게 오는 백핸드 슬라이스 그리고 드롭샷은 최고에 걸맞고 또한 서브할 때 토스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페이크를 걸고 서브 위치 또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서브는 정확성이 굉장히 중요하고 까다로워 가장 위력적인 서브 중 하나이며 백핸드나 슬라이스나 공을 치기 전 백스윙이 같아 페이크 걸기에 매우 유리하고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 또한 높으며 자신은 시종일관 정적인 운동량으로 일관하여 상대방을 공략하며 그 외에 포핸드는 다른 프로 선수들이 꼽는 최고의 포핸드로 꼽히고 있는데 라켓 면으로 볼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평면으로 때리는 플랫 샷과 탑스핀 샷을 원하는 데로 구사하며 원하는 방향과 위치로 정확하게 꽂아 득점을 얻어냅니다.

끝없는 패배

페더러는 1998년 한 지역에서 그의 ATP 투어 데뷔 첫 경기로 이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한 선수에게 0대 2로 패했으며 같은 해에 그는 두 개의 대회에 더 참가하기는 했으나 당시 그가 치른 대부분 경기의 수준은 아직 주니어 레벨에 머물러 있었고 1999년 4월 그는 이탈리아와의 데이비스 컵 경기에 스위스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프랑스 오픈에 참여하면서 생애 최초의 그랜드 슬램 대회 경기를 치렀지만 1회전에서 패트릭 라프터에게 4세트 만에 패하고 윔블던에서도 와일드카드를 받아 생애 첫 출전을 했지만 1회전에서 당시 순위 59위이던 체코 선수에게 5세트 끝에 패 세계 랭킹 66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는데 이때 당시 그는 순위 100위권 안에 든 가장 어린 선수로 이 대회에서 그는 호주의 레이튼 휴이트와 팀을 이루어 복식에도 출전하여 16강까지 진출했으며 2000년 1월에는 생에 첫 호주 오픈에 출전하여 3회전에서 당시 세계 랭킹 49위였던 프랑스의 아르노 클레망에게 패했고 같은 해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US에서도 그는 3회전까지 진출하여 당시 순위 12위였던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에 패하였고 2000년도 시드니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해 대회에서 생애 최초로 결승에 올랐으나 같은 스위스 선수였던 마크 로세트에게 패하고 그의 고향인 바젤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준우승하였습니다.

최고의 전성기

2004년에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는데 성적은 오픈 시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굉장한 수준으로 그는 2004년에 4개 그랜드 슬램 대회 중 프랑스 오픈을 제외해 3개 대회에서 우승하였고 세계 랭킹 10위권 이내의 선수에게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으며 결승에 진출한 대회에서는 모두 승리하였으며 테니스 세계 챔피언의 칭호까지 얻었는데 한 해 총전적은 74승 6패였고 그랜드 슬램 대회 3개 다른 대회 등으로부터 총 11개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06년에 페더러는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 해 3개 그랜드 슬램 석권을 달성하였고 그는 연말 순위에서도 1위로 우승을 하였고 2위인 선수와 수천 포인트의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호주 오픈 결승에서는 키프로스의 한 선수를 3대 1로 꺾고 우승하여 이로써 2003년 우승 이후 그랜드 슬램 결승전 7연승을 달성했는데 이는 8연승 다음으로 긴 기록이었습니다.

 

페더러는 2009년 여자 프로 테니스 선수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지금의 부인과 결혼하여 두 사람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테니스 종목 스위스 국가대표로 함께 출전하면서 만나게 되었으며 페더러의 부인은 고질적인 발 부상 때문에 2002년 투어에서 은퇴하였고 이후 페더러의 홍보 매니저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참고 논문: 기립의 운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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